조주영변호사가 한경비즈니스에 기고한 글을 요약하였습니다.
-채무자의 저당권 설정의무는 자신의 의무이므로, 배임죄에 해당되지 않아...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저당권을 설정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돈을 빌린 후 이를 어기고 제3자에게 저당권을 설정해주는 이른바 '이중저당'을 한 경우, 과연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A씨는 2016년 6월 14일 B씨로부터 18억원을 빌리면서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에 4순위 근저당권(이하 편의상 ‘저당권’이라 함)을 설정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A씨는 B씨에게 저당권을 설정해주지 않았고, 2016년 12월 15일 이 아파트를 채권최고액 12억원에 C사에 4순위 저당권을 설정해주었다. 큰 손해를 보게 된 B씨는 A씨를 배임죄로 고소하였고, 1,2심이 A씨의 배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자 A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우선 형법 제355조 제2항에 따라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성립한다. 여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대법원 2014. 8. 21. 선고 2014도336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그동안 이 사건과 같은 채무자의 이중저당행위에 관하여 대법원은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여왔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저당권 설정을 약속한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 이루어지는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고, 채무자의 저당권 설정의무는 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자신의 의무이자 자신의 사무일 뿐이므로 비록 약속을 어기고 제3자에게 저당권을 설정하였더라고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면서도 부동산 이중매매에 대해서는 ‘부동산이 국민의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부동산 매매대금은 통상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뉘어 지급되는데,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대금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지급하고도 매도인의 이중매매를 방지할 충분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거래 현실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을 유지한다고 하였다.
부동산 이중저당 설정자(채무자)에게 배임죄를 부정한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민사 문제에 형사상 제재를 최소화하려는 최근의 경향과 궤를 같이 하고, 형법적용(형벌)의 보충성, 최후수단성이라는 근본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중저당 설정자에게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음에 따라 대여금 상당의 손해를 입은 채권자는 결국 채무자에게 민사책임밖에 물을 수 없다는 결론이 되는데, 해당 부동산이 채무자의 유일한 재산이라든가 채무자의 다른 재산에 대하여는 강제집행의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기에 채권자 보호에 미흡하다는 비판이 따를 수 있으나, 모든 소송에서 사실상 최고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론을 숙지한다면 분쟁의 예방과 조속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